탈상
오이카게
카게야마가 죽은 이후의 이야기입니다,
오이카와는 깨어난 후에도 오랫동안 천장을 보며 누워 있었다. 자연스럽게 눈에 고인 눈물이 흘러내렸다. 지난 몇 주간 이미 습관이 된 일이었다. 바깥에서 비가 창문에 부딪히는 소리가 들려왔다. 평소보다 늦게 하루를 시작하게 된 그는 핸드폰으로 날짜를 확인했다. 내일이었다.
가장 찬란한 순간에 인생의 마침표가 찍힌 천재가 있었다. 소설이나 영화도 이보다 극적일 순 없었다. 사람들은 젊은 나이에 떠난 천재를 애도하고 슬퍼하면서도, 그들 스스로 위로하기 위해 신이야말로 정말 위대한 각본가라고 떠들었다. 세계대회에서 우승한 지 겨우 이틀이 지난날, 비는 오늘처럼 세차게 내렸고 삼류드라마처럼 자동차는 청년의 몸 위를 미끄러져 지나갔다.
오이카와는 다시 꼬리를 무는 생각을 떨쳐내기 위해 고개를 저었다. 처음 사고 소식을 들었을 때 오이카와는 되려 침착하게 생각하려 했다. 그가 중환자실에 입원했다는 소식도, 장장 8시간에 걸친 대수술을 했다는 소식을 기사를 통해 보았을 때도 묘한 희망감에 들떠 있었다. 하지만 수술 후 일주일도 지나지 않아 그의 사망 기사가 인터넷에 올라온 것을 보고 오이카와는 지구 내핵 가장 끝으로 처박히는 느낌을 받았다.
이미 부은 눈을 문지르며 그는 침대에 걸터앉아 최대한 멍하게 있으려 노력했다. 오이카와는 아직도 카게야마가 죽었다는 것이 멀게만 느껴진다고 생각했다. 뉴스와 기사를 통해 전해 들은 그의 부고는 현실감이 없었다. 어쩌면 모든 것이 다 끔찍한 꿈이었을 따름이고, 깨어난다면 여전히 자신의 핸드폰에는 그의 문자가 와 있을 것이라고 믿고 싶어졌다. 하지만 문자는 끊긴 지 이미 한 달이 넘어갔고, 오이카와는 카게야마에게 굳이 전화를 건다든가 문자를 보내지 않았다.
그렇지만 내일은 카게야마의 49재가 있는 날이었다. 망자가 이승을 머물다 저승으로 떠나는 데에는 49일이 걸린다고 했다. 내일이 지나면 카게야마가 들을 수 있도록 작별인사를 할 기회도 없어지는 것이었다. 오이카와는 머리맡에 두었던 수건으로 다시 눈을 훔쳤다.
이와이즈미는 오이카와를 재촉하지 않았다. 사고 소식을 들은 직후 오이카와는 어색하게 웃으며 별일 없겠지, 라고 말했을 뿐이었다. 바람은 무색하게 무너졌고 그 기대만큼 자신의 친구도 무너져내렸다. 3일간 진행되던 장례식에 오이카와는 참석하지 못했다. 카게야마와 오이카와를 알던, 그리고 그 둘의 관계를 알던 사람들은 왜 그가 오지 않는가에 대해 잠시 이야기했지만, 이와이즈미가 오이카와가 입원했다는 말을 듣고 다시 그 사실만으로 슬픔에 젖어 통곡했다.
오이카와는 장례식이 끝나는 날까지 신열에 시달렸다. 유해가 작은 상자 안에 들어간 이후 봉안당에 모셔진 그 다음 날, 거짓말 같게도 그는 자리를 털고 일어날 수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잔열은 그의 머릿속에 남아 식히기 위해 계속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첫 일주일간 오이카와는 식사를 하는 것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몇 번 젓가락을 들었지만, 자신이 씹고 넘기고 소화하는 그 과정이 결국 생존이라는 죄로 이어진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웃다가도 잠시 입을 다물었다, 자신이 감히 기뻐했다는 사실에 죄책감과 슬픔으로 흐느끼곤 했다. 몇 번 핸드폰을 들어 익숙한 번호를 보고, 대화목록을 올려보다 무너지는 것은 예사였다.
시간은 아주 천천히 오이카와의 슬픔을 무디게 만들고 있었다. 겨우 7주의 시간으론 살아있는 사람과 죽어있는 사람을 이별시키기엔 벅찼다. 이와이즈미는 눈이 부어오른 친구에게 애써 웃어보였다. 오이카와는 형편없이 얼굴을 구기며 웃으려 노력했다. 아직 카게야마와 오이카와를 모두 알던 사람들을 만나는 것은 강제로 추억을 머릿속에서 재생시키는 바람에 힘들었다.
"몸은 좀 어때?"
"저번보단 많이 나아졌어. 아픈 곳도 없고……."
입술을 비죽 이며 쓰게 웃는 오이카와는 이곳에 없는 사람의 표정을 닮아 있었다. 이와이즈미는 생각을 뒤로 숨기고 고개를 끄덕였다. 살짝 야윈 얼굴 때문인지 눈은 더 커 보였고, 눈가는 붉게 물들어 있었다. 평소라면 그의 등을 내리치며 기운 내라고 말했을 이와이즈미는 어깨를 한 번 으쓱하고 미리 봐 둔 카페의 주소를 말했다. 그의 배려를 눈치챈 오이카와는 이번엔 코끝도 붉게 물들이며 고개만 주억거렸다.
죽음은 무엇일까, 오이카와는 지난 몇 주간 평생 하지 않았던 질문을 곱씹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을 만날 때 그는 이런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최대한 밝은 이야기로 시작해도 모든 이야기의 끝은 그의 옆에, 또는 그의 앞에 앉아서 손을 잡고 그를 바라보던 사람으로 끝났다. 같이 했든 안 했든 이제는 중요하지 않았다. 모든 시간과 장소와 행동은 이미 끝나 있었다. 이어서 쓸 수 없는 이야기라는 것을 확인하고 나면 그는 슬픔에 지쳐 이불 위로 쓰러졌다.
'그래서, 내일도 못 갈 것 같아?'
헤어지기 전 이와이즈미는 세 시간 동안 삼키고 있던 말을 했다. 어쩌면 그 말은 사흘 전, 아니면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가 오이카와가 신열을 앓던 그때부터 하고 싶었던 말이었을 것이다. 이와이즈미는 장례식장에 들렸던 사람이 병원에 들르는 것은 좋지 않다는 미신에 따랐고, 그를 방문하는 대신, 단 한 통의 문자만 남겼을 뿐이었다. '잘 보내고 왔다.' 오이카와는 잠시 눈을 깜박이다,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 단 한마디의 말일 지어도 그것은 가장 중요한 사실을 인정하는 선언이었다.
'아니, 갈 거야.'
사랑하는 사람의 장례식에 가지 못했던 것으로도 충분했다. 카게야마가 죽었다는 것을 인정해야 오이카와 역시 붕 뜬 상태로 연인의 문자를 기다리는 것을 그만둘 수 있었다. 오이카와는 다시 핸드폰을 켰다. 빈 화면을 보고 그는 올라오는 것을 애써 참은 채 알람을 설정했다.
그 다음 날도 비가 내렸다. 커뮤니티에서 몇몇 사람들은 하늘도 같이 슬퍼하는 것 같다고 글을 남겼다. 비는 비일 뿐이고, 사람들은 위로를 원했을 뿐이었다. 젊은 천재는 팬이 많았다. 그의 49재는 팬들도 참석할 수 있었다. 검은 정장을 입은 사람들은 표정만큼이나 칙칙한 우산을 들고 봉안당을 방문했다. 그의 팀 동료들은 물기가 다 빠진 얼굴로 조용히 방문객들을 맞고 있었다.
오이카와는 검은색 우산을 고쳐 쥐었다. 우산 사이로 떨어지는 빗방울이 들이쳤다. 그는 알람 소리를 들었지만, 부러 늦게 일어났고, 천천히 씻고 천천히 옷을 입었다. 그리고 약간의 핑계로 간단하게 음료수를 한 잔 마시고, 다시 이를 닦고 느리게 집을 나섰다. 차를 운전하지 않고, 서행하는 버스를 선택했다. 그렇게 형벌의 시간을 늦췄지만 이제 겨우 오후 세 시였다. 오이카와는 심호흡을 하고 건물 내부로 들어갔다.
그곳은 이승과 저승이 구분되지 않은 곳이었다. 살아있는 사람들은 죽은 사람을 위해 편지를 쓰고 꽃을 가져다 놓았다. 어떻게든 필사적으로 사랑을 다시 속삭이고 껴안으려 하지만 한 자리에 머무르게 된 사람을 붙잡을 순 없었다. 흘러가는 물결 속에서 사람들은 손을 내밀고 기슭을 손톱으로 긁었다. 엄마 사랑해요, 다시 만났으면 좋겠다, xx코 나도 잘 지내고 있어…. 작은 꽃다발에 묶인 리본들을 읽던 오이카와는 어느새 아이처럼 울며 복도를 지나고 있었다. 사랑해, 사랑해……. 누가 사랑을 쉽게 말하지 말라고 했던가. 마지막 최후의 말이 왜 사랑해가 아니었던가? 지금 오이카와가 아무리 외치더라도 그 말을 카게야마가 들을 순 없었다. 이제 와서 무엇을 하더라도 그것은 전해지지 못 하고 휩쓸려 사라질 뿐이었다.
엉망진창이 된 오이카와는 고개를 들어 봉안당을 보았다. 무채색의 세상에서 유일하게 타오르는 색깔의 머리카락을 가진 남자가 자신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하얗게 튼 입술 사이로 신음이 흘러나왔다.
"이제 오셨군요."
"……."
둘은 아무 말 없이 서로를 바라보았다. 히나타도 작은 몸집이 더 작아져 있었다. 오이카와는 잠시 히나타가 자기를 비난할 것으로 생각하고 어깨를 움츠렸다. 하지만 히나타는 그와 눈을 마주친 이후에 더욱 슬픈 표정이 되었을 뿐, 오이카와에게 별다른 말을 하진 않았다. 한 마디라도 내뱉으면 눈물도 같이 흘러내릴 예감에 오이카와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그를 바라보았다. 히나타는 손을 뻗어 홀 하나를 가리켰다. 할 말을 삼킨 채 오이카와는 가볍게 묵례하고 홀로 걸어갔다.
향냄새가 아찔했다. 팬들이 가져다 놓은 국화가 하얗게 시야를 흩트려놓고 있었다. 밭은 숨을 쉬자 온갖 죽음의 냄새가 느껴져 오이카와는 다시 신열이 오르는 것을 느꼈다.
그는 느리게 걸어가 마침내 그가 도망치던 사람에게로 다가갔다. 180cm가 넘던 청년은 조그마한 항아리 안에 다 들어가 있었다. 그가 쓰던 소지품들과 유품 몇 개, 액자가 유리창 너머로 보였다. 그가 우승컵을 들고 환하게 웃는 사진과 팀메이트들과 웃는 사진들이 들어 있었다. 그리고- 오이카와는 입술을 깨물고 자신과 카게야마가 찍힌 사진을 보았다. 그땐 이렇게 끝이 날 줄 알았다면 자신은 이렇게 웃을 수 없었을 것이다. 오이카와는 천장을 바라보고 손을 아프도록 꽉 쥐었다. 입을 열자 다시 한숨이 흘러나왔다. 그는 입술을 깨물고, 다시 몇 번이고 한숨을 내쉬고 마침내 떨리는 목소리로 카게야마에게 말을 건넸다.
"난……."
하고 싶은 말은 닿지 않는다. 오이카와는 무너져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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